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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이어의 현장
권혁길 2018-04-06 추천 0 댓글 0 조회 1056
[성경본문] 마가복음6:30-44 개역개정

30.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31.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32.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33. 그들이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그들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그들보다 먼저 갔더라

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35.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36.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37.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38.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39. 제자들에게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40. 떼로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은지라

41.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42. 다 배불리 먹고

43.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44.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오병이어의 현장(6:30-44)

2018. 4.8. 주일예배

작성자 : 권혁길 목사(부산은광교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오천 명 이상이 먹고도 열 두 바구니가 남는 이 역사를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 표현을 한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어떻게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가지고 오천 명 이상이 먹고도 남았을까? 그것도 고래나 상어나 참치같이 큰 물고기가 아닌 작은 물고기였다. 원문에 보면, ojyavrion(옵사리온) 빵에 곁들여 먹기 위해서 소금에 절이거나 굽는 식용 물고기로서 아주 작은 물고기를 의미한다.

그리고 떡도 고급 떡이거나 크기가 대단한 떡이 아니고 당시 일반 서민들이 흔히 먹는 보리떡이었다. 이것을 가지고 남자만 오천 명이 먹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는 기적이 일어났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난 이 현장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 문제의 현장이었다.

* 많은 사람이 모인 장소였다.

당시 예수님의 소문이 온 땅에 퍼졌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큰 무리가 모인 이유는 요한복음 62절에 보면,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왔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64절에 보면,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고 했다. 명절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는 관계로 모인 수가 남자만 오천 명이었다. 여자와 어린아이를 합산하면 최소한 만 명은 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 최악의 상황이었다.

본문, 마가복음 635절에 보면, 때가 저물어 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곳은 빈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라고 했다. 때는 저물어 가고, 장소는 빈들이었다. 주변에 먹을 것을 구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멀리 가서 구해올 시간도 아니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하루 종일 굶은 사람도 있었다면 매우 심각한 위기였다.

 

* 재정적으로도 여의치 않았다.

본문 37절에 보면,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라는 말씀을 보면 최소한 이백 데나리온의 돈이 필요했다. 한 데나리온이 당시에 장정 하루의 품삯이었다. 요즘 우리나라에 장정 일당을 최소한 십 만원으로 계산을 해도 이 천 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정도의 많은 금액이 제자들에게 있을 리가 없다. 비록 돈이 있다고 해도 그 많은 사람들이 먹을 만한 음식을 구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매우 난감한 상황이었다.

 

* 오늘날 우리의 현실일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이 이와 같이 난감할 때가 있다. 환경적인 한계, 경제적인 한계, 시간적인 한계, 상황이 진퇴양난인 어려운 환경에 처할 수도 있다. 오병이어의 현장이 처음에는 인간의 힘으로 넘을 수 없는 한계상황의 현장이었다. 영적으로 본다면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말미암아 전적 타락, 전적 부패로 말미암아 자력으로 절망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현대인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2. 전화위복 (轉禍爲福) 의 현장이었다.

* 전화위복 (轉禍爲福) 이란 무슨 뜻인가?

전화위복이란 말은 (구를 전) (재앙 화) (할 위) (복 복)자를 사용하는데, 轉禍爲福(전화위복)이란 좋지 않은 일이 反轉(반전)되어 좋은 일이 된다는 뜻이다. 재앙이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으로, 좋지 않은 일이 계기가 되어 오히려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오병이어야말로 전화위복의 전형적인 모델이다.

 

*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나기 전의 상황을 보라.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나기 전에는 매우 혼란스러웠고, 걱정과 근심과 염려정도가 아니라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손에 받아들고서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신 후에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셨을 때, 제자들이 청중에게 떡을 나누어주면 줄수록 떡이 계속 늘어남으로서 수많은 사람이 먹고도 남는 역사가 일어났다.

 

* 이처럼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전화위복의 역사가 일어난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것이 변하여 복이 되는 역사가 일어난다. 죄인이 예수님을 만나면 의인이 되고, 가난한 자가 예수님을 만나면 부요한 자가 되고, 병든 자가 예수님을 만나면 건강을 얻게 되고, 불행한 자가 예수님을 만나면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실패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면 성공적인 사람이 되고, 지옥에 갈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면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 이처럼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극적인 대 반전이 일어난다.

 

* 그 이유가 무엇인가?

예수님은 곧 인류를 지으신 창조주이시다. 예수님은 온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능력의 주님이시며, 예수님은 죽은 자도 살리시는 생명의 주님이시고, 예수님은 있는 것도 없게 하시고, 없는 것도 있게 하시는 기적의 주님이시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예수님의 손에 들려졌을 때에 기적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을 먹인 것 같이 우리가 주님의 손에 붙잡히고, 주님의 손을 통과할 때 기적이 일어난다. 우리 자신과 가족과 특별히 자녀들이 예수님의 손에 붙잡힌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직장과 사업장과 우리가 섬기는 교회와 이 나라와 민족이 주님의 손에 붙잡혀야 한다.

 

3. 오병이어가 주는 교훈

* 문제의 현장에 주님을 모셔라.

벳세다 광야가 심각한 현장이었지만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현장에 계셨기 때문에 문제의 현장이 기적의 현장으로 바뀌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의 현장에 주님이 계신다면 그 어떤 문제도 문제가 될 수 없다. 우리 예수님은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오셨다. 내 마음에 주님이 계신다면, 우리 가정에 주님이 계신다면, 우리 자녀들안에 주님이 계신다면, 내 직장과 사업장에 주님이 계신다면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 내게 있는 것을 주님께 드려라.

오병이어의 기적의 현장에 기적의 매개체는 한 어린 소년이 가져온 보리떡 다섯 개와 소금에 절인 작은 물고기 두 마리였다. 그러나 그것을 예수님께 드렸을 때 그것을 통하여 기적을 행하셨다. 지금 나에게 무엇이 있는가? 그것을 믿음으로 드리자. 그것이 비록 적은 분량일지라도 믿음으로 기도를 드리고, 믿음으로 순종하고, 믿음으로 헌신하고, 믿음으로 헌금하고, 믿음으로 충성할 때에 내가 드리는 믿음의 행위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하여 기적을 행하신다.

내가 드린 시간과 물질과 몸과 마음이 비록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에 불과할지라도 예수님은 그것을 가지고 얼마든지 기적을 행하실 수 있다. 나의 모든 것이 주님의 손을 통과할 때에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다.

 

* 인간의 노력과 하나님의 도우심이 함께 할 때 기적이 일어난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예수님께서 일방적으로 행하신 기적이 아니다. 제자들의 수고와 노력이 있었다. 제자들은 떡을 구해오는 수고를 하였고, 이름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한 어린아이는 그것을 아끼지 않고 제자들을 통하여 주님께 드리는 헌신이 있었고, 예수님께서 그것을 받아 축사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청중에게 나누어 주라고 했을 때에 제자들의 수고와 순종이 있었다.

이처럼 인간의 노력과 하나님의 도우심이 합쳐질 때에 기적이 일어난다. 그래서 에디슨이 말하기를 기적은 99%의 노력과 1%의 영감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과 수고를 했어도, 하나님의 1%의 도우심이 있을 때에 기적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나의 수고나 노력 없이 하나님의 기적만 요구하는 것은 인간의 욕심이며 어리석은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애쓰고 힘쓰는 자를 도우신다.

 

* 거룩한 질서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

오병이어의 현장을 보라. 놀라운 모습을 볼 수 있다. 본문 마가복음 639-40절에 보면, 제자들에게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떼로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은지라고 하였다. 여기서 떼를 지어 라는 원문이 sumpovsion(쉼포시온) 주연, 연회, 무리, 그룹, 이라는 뜻이다. 마치 심포지엄 을 위하여 모여 앉듯이 모두가 질서정연하게 앉았다. 놀라운 관경이다. 만약에 이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온 종일 굶주리어서 배고픈 사람들이었는데 서로 먼저 먹겠다고 막 몰려들었다면 안전사고가 났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오십 명씩 백 명씩 떼를 지어 앉아서 기다리는 질서를 유지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떡을 나누어 주기가 아주 편하고 쉬웠을 것이다. 오늘 날 가정이나, 사회, 심지어 교회 안에도 이 질서가 필요하다. 고전 14:33절에 보면,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고 하셨다. 오늘날 가정이나, 사회, 국가는 물론 한국 교회의 심각한 문제는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 하나님은 오직 하나가되는 곳에 은혜를 주시며, 하나가 되어 질서가 유지되는 곳에 기적을 행하신다.

 

* 보이지 않는 손길이 귀하다.

오병이어의 현장에서 기적의 씨앗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든 어린 아이의 도시락이었다. 요한복음 69절에 보면,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라고 했다.

이 도시락을 누가 만들었을까? 분명한 것은 그것을 가져온 어린아이의 엄마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준비하여준 엄마의 이름이나 그 도시락을 기꺼이 예수님께 드린 어린 소년의 이름이 기록되거나 소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도시락을 만든 엄마의 손길과, 그 도시락을 들고 와서 예수님께 드린 어린이의 손길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오늘날도 이 보이지 않는 손길이 정말 귀하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숨은 가운데서 봉사하며 섬기는 손길은 정말 귀하다. 사람들은 비록 몰라줘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기억하시고, 숨은 봉사자들을 통하여 기적과 은혜를 베푸시며, 반드시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

 

* 주님이 계신 곳에는 부족함이 없다.

오병이어의 현장은 모든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남는 부족함이 없는 현장이었다. 요한복음 611절에 보면,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고 하였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채워주시는 좋으신 분이시다. 배부르게 라는 원문이 ejmpivplhmi(엠피플레미) 만족하게 하다, 채우다, 충분하게 하다, 소원을 성취하다, 라는 뜻이다. 이 세상에서 나의 원하는 대로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요한복음 6:12-13절에 보면,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고 하였다. 그 많은 사람들이 원 없이 배부르게 먹고도 남은 것이 열 두 바구니나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모자람이나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231절에서 고백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하였다. 그렇다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모자람이 없다 넉넉하게 풍족하게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 축제의 현장이었다.

오병이어의 현장은 모두가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그리고 만족해하는 축제의 현장이었다. 처음에는 걱정과 근심의 현장이었고 책임이 있는 제자들에게는 매우 부담스러운 현장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심으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먹고 즐기면서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감사의 현장이 되었다. 기적의 현장이었고, 찬양과 간증의 현장이 되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처럼 놀라운 변화와 기적이 일어났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이 죄인을 죄에서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모두 저주를 끝내 주시고, 가난한 자를 부요하게 하시면, 병든 자에게 건강을 주시며, 불행한 자를 행복하게 하시고, 실패자를 성공자로 만드시며, 무시무시한 지옥에 가서 영원히 고통 받아야 할 사람들을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게 하시려고 오셨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서 수많은 사람이 먹고 남게 된 것과 같이 예수님 자신이 인류를 위한 생명의 떡이 되시고자 십자가 위에서 보배로운 피를 쏟으셨으며, 자신의 몸을 인류의 떡으로 주셨다. 그래서 요한복음 6:48절에서,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고 하셨고, 요한복음 6:35절에서는,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의 떡을 먹고 배부른 것과 같이 이제 우리도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생명을 얻고 날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기적과 축복의 현장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자. 우리 가정이 우리 교회가 직장과 사업장이 오병이어의 현장이 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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