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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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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불호가 엇갈리는 현장
권혁길 2020.10.16 조회 1422

[성경본문] 열왕기하5 : 14 - 27 | 개역개정

  •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 15.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니
  • 16. 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 앞에서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나아만이 받으라고 강권하되 그가 거절하니라
  • 17. 나아만이 이르되 그러면 청하건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 18.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 거기서 경배하며 그가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 19. 엘리사가 이르되 너는 평안히 가라 하니라 그가 엘리사를 떠나 조금 가니라
  • 20.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스스로 이르되 내 주인이 이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 그가 가지고 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받으리라 하고
  • 21. 나아만의 뒤를 쫓아가니 나아만이 자기 뒤에 달려옴을 보고 수레에서 내려 맞이하여 이르되 평안이냐 하니
  • 22. 그가 이르되 평안하나이다 우리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지금 선지자의 제자 중에 두 청년이 에브라임 산지에서부터 내게로 왔으니 청하건대 당신은 그들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라 하시더이다
  • 23. 나아만이 이르되 바라건대 두 달란트를 받으라 하고 그를 강권하여 은 두 달란트를 두 전대에 넣어 매고 옷 두 벌을 아울러 두 사환에게 지우매 그들이 게하시 앞에서 지고 가니라
  • 24. 언덕에 이르러서는 게하시가 그 물건을 두 사환의 손에서 받아 집에 감추고 그들을 보내 가게 한 후
  • 25. 들어가 그의 주인 앞에 서니 엘리사가 이르되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 하니 대답하되 당신의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 26. 엘리사가 이르되 한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이할 때에 내 마음이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이냐
  • 27. 그러므로 나아만의 나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하니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나오매 나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더라

호불호(好不好)가 엇갈리는 현장(왕하 5:14-27)

2020. 10. 18. 주일예배

작성자 : 권혁길 목사(부산은광교회)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때로는 호불호가 엇갈리는 현장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호불호(好不好)의 뜻은 좋음과 좋지 않음을 아울러 이르는 말입니다. 호불호가 엇갈린다는 것은 좋고 나쁨이 갈린다는 뜻으로서 우리 삶의 현장에 흔히 있는 일들입니다. 특별히 신앙생활에서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들입니다. 오늘 이 시간 이 자리도 호불호가 엇갈리는 시간과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간이 불호(不好)이 시간이 아니고 호()의 되기를 원합니다. 다시 말하면 은혜가 되고 복이 넘치는 좋은 시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1. 나병이 낫고 나병이 걸리는 호불호의 현장

* 나병을 고침 받는 나아만 장군

이스라엘의 이웃 나라인 아람나라의 유명한 장군인 나아만이 당시에 불치병으로서 무섭게 여기는 나병환자였습니다. 그가 비록 나병환자였지만 원래 유명한 장군이었기에 왕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왕의 추천으로 이스라엘 나라에 유명한 선지자 엘리사에게 병을 고치러 왔습니다. 선지자 엘리사는 나아만 장군에게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했고 본문 14절에 보면,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고 했습니다.

* 사례하는 나아만 장군

병 고침을 받은 나아만 장군은 너무 감사해서 엘리사에게 예물을 드리면서 사례를 했습니다. 본문 5절에 보면, 나아만이 곧 떠날 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왔다고 했습니다. 가지고 온 예물을 도두 다 감사의 표시로 엘리사에게 드렸다고 봅니다. 그러나 본문 6절에 보면, 엘리사는 그 예물을 받지 않고 거절 합니다. 엘리사가 선물을 거절한 이유를 잘 모르겠으나 이 상황을 엘리사의 사환은 다 보고 있었습니다.

* 선물을 탈취하는 사환

나아만 장군이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엘리사의 사환이 그 뒤를 따라가서 엘리사 선지자가 선물을 받아오라는 거짓말을 하여 선물을 받아왔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엘리사는 본문 27절에서 이렇게 책망했습니다.

그러므로 나아만의 나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하니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나오매 나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더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 그야말로 호불호가 엇갈리는 순간입니다.

똑 같은 사건과 현장에서 나아만은 나병이라는 무서운 병을 고쳤고, 엘리사의 사환은 무서운 나병에 걸려 자녀와 후손들까지도 나병이 유전되어 대대로 망했습니다.

한 순간에 호불호가 엇갈리는 충격적인 장면입니다. 정말 끔직한 일이고 정말 슬픈 일입니다.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한다는 말이 이럴 때 더욱 실감이 납니다.

 

2. 열두 정탐꾼의 호불호가 엇갈리는 현장.

* 가나안 땅에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인 땅을 들어가기 위하여 광야에 머물러 있는 동안 모세는 백성의 요청에 따라서 열두 명의 정탐꾼으로 하여금 사십일 동안을 정탐하게 했습니다. 그들이 정탐을 하고 돌아와서 모세와 백성들 앞에서 하는 보고가 서로 달랐습니다.

열 명의 보고는 그 땅이 좋은 것은 사실이나 아낙 자손이라는 거인들이 있고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볼 때에 우리는 그 땅을 점령할 수 없다는 보고를 했습니다. 이들의 보고를 들은 백성들은 낙담이 되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의견이 나올 정도로 분위기가 험해졌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이라는 두 정탐꾼의 보고는 달랐습니다.

그 땅에 거인들이 살고 군사시설이 잘 되어있어서 우리가 그 땅을 점령하기가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우리가 능히 그 땅에 들어가서 차지할 수 있다고 보고를 했습니다.

* 왜 이렇게 보고가 엇갈렸습니까?

열 명의 정탐꾼은 현실을 정직하게 보았고 정직한 보고를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눈으로 현실을 그 대로 본 것입니다. 그리고 듣고 본 대로 보고를 했습니다. 인간적인 면에서는 볼 때 매우 현실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똑 같은 현실이지만 열 명의 정탐꾼과는 달리 믿음의 눈으로 보았고, 믿음으로 생각을 했고, 믿음으로 판단을 했고, 믿음의 말로 보고를 했습니다. 단순히 믿음의 차이였습니다.

* 호불호가 엇갈리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우리 힘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현실적으로 정직하게 보고한 사람들은 스스로 포기하여 들어가지 못했고, 그들과 달리 믿음의 눈으로 보고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판단을 하고 믿음으로 말하고 그들의 믿음대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은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같은 기간에 같은 장소를 정탐하고 돌아온 이들에게 희비가 엇갈리고, 호불호가 엇갈리는 장면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정직하면 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매우 위험하고 역설적인 말입니다. 현실은 정직하게 보고 천직하게 말하는 것은 매우 인간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현실을 믿음으로 보고,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말을 해야 합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10:27절에,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열 명의 정탐꾼은 자신만을 믿는 정직하고 현실적인 사람이 되어 가나안 땅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과 달라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다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호불호를 엇갈리게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이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3. 한 사람은 구원을 받고 한 사람은 멸망을 당하는 호불호의 언덕.

*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예수님은 인류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늘 영광 보좌를 버리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결국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5:9절의 말씀에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는 말씀대로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보배로운 피로서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 갈보리 언덕에는 세 개의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의 십자가였고, 양 옆에 두 개의 십자가가 있었는데, 그들은 당시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키고 사형선고를 받은 두 명의 강도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가운데 두고 이들의 대화가 오고 갑니다.

23:39절에 보면,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비난합니다.

23:40-42절에 보면,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라고 하면서 예수님께 신앙고백을 합니다.

23:43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 참으로 극적인 순간입니다.

똑 같은 장소에서 똑 같이 사형을 받아 죽는 현장에서 한 사람을 예수님을 끝까지 비난하다가 죽어 멸망을 받았고, 똑 같은 현장에서 똑 같은 죄명으로 사형을 받는 또 다른 한 사람은 예수님께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님께 신앙고백을 함으로서 구원을 받아서 낙원에 들어가는 복을 받았습니다.

참으로 호불호가 엇갈리는 절대 절명의 현장이었습니다.

 

4. 호불호의 엇갈림은 어떤 차이입니까?.

* 선악을 분별하는 차이입니다.

앞에서 말한 엘리사를 통해서 나병을 고침 받은 나아만 장군과 그가 버린 나병이 걸린 엘리사의 사환을 보십시오. 엘리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하고 자신의 교만과 자신의 자존심과 편견 된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순종한 나아만은 그 무서운 나병에서 고침을 받았고,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고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선물을 챙겼던 엘리사의 사환은 나병이 결려서 자신뿐만 아니라 자녀와 후손에게까지 나병이 이어지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 믿음의 차이입니다.

앞에서 말한 열두 명의 정탐꾼들을 보십시오.

열 명의 정탐꾼은 우리는 감히 그곳에 들어갈 수 없다. 그들은 거인이며 우리는 그들에 비교하면 메뚜기에 불과하니 우리는 못 들어간다고 인간적인 보고를 한 그들은 들어가지 못했으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능히 그 땅을 차지하리라고 믿음의 말로 백성들을 설득시킨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을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믿음의 차이입니다. 믿음은 호불호를 엇갈리게 합니다.

* 인정과 고백의 차이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한 편 강도는 구원을 받았고, 한 편 강도는 구원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음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어떤 차이입니까? 구원받은 강도는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고 인정하고 자신의 죄와 잘 못을 고백하며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주여 나를 기억 하옵소서 라고 하면서 예수님께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한 편 강도는 자신의 잘못과 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를 구세주가 바로 옆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구원받을 수 있는 절호외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야말로 호불호가 엇갈리는 중요한 현장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은광교회에 놀라운 기회를 주셨고 우리 모두는 호불호가 엇갈릴 수 있는 절대 절명의 중요한 순간을 맞이한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도록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린다면 담임 목사의 조기 은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38년간 담임 목사로 사역을 하고 원로 목사가 되는 권혁길 목사를 어떻게 대우하며, 앞으로 어떤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 벧엘 교회와의 교회합병이후에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 새로 담임 하시는 목사님을 어떤 자세로 맞이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 모두에게 호불호가 엇갈릴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기회입니다.

제가 진심으로 호소하는 것은 우리 교회 속한 여러분 중에 어는 한 사람도 이번일이 불호(不好)가 되지 않고 호()만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이 복을 받을 수 있는 최고의 기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정말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를 가지고, 믿음으로 결단하고,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복 받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 도움을 구한다면 반드시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엄청난 기적을 체험하고 대대로 복을 받으면서 간증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자신 있게 말씀드리지만, 정말 기대하셔도 됩니다. 제가 재삼부탁 드리는 것은 호불호 중에, 불호(不好)의 주인공이 아니라, 기적과 축복의 주인공으로 호()의 주인공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좋은 일만 있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좋은 일만 있게 하시려고 십자가 위에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셨고, 자금도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친히 간구합니다.

성령님도 우리에게 좋은 일만 있게 하시려고 친히 임재하시어서 우리 곁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영원토록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호불호가 엇갈리는 이 험한 세상에서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면서 항상 호()를 누리는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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